참기름과 들기름이 똑 떨어졌다.
나물을 무쳐도, 볶음밥을 해도
어딘가 고소한 맛이 빠진 듯 했다.
마트에서 파는 기름은 향이 약했다.
'이게 아닌데'
사는 지역도 아니고,
지갑 속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서산사랑 상품권
오늘은 이상하게 꼭 써야 할 것 같았다.
무턱대고 네비게이션에 찍고 출발했다.
전통시장 안 어딘가엔
방앗간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였다.
서산 시장 골목을 이리저리 헤매다
야채가게 아주머니께 물었다.
“혹시 여기 방앗간 어디 있어요?
참기름이랑 들기름 좀 사려고요.”
"방앗간들 다 문 닫았어요"
그러곤 들기름 한 병을 꺼내
"내가 먹으려고 한 병 남겨둔 건데, 가져가요."
가격은 25,000원.
고마웠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이왕 온 김에
제대로 짜는 방앗간을 찾아보기로 했다.
익숙지 않은 골목 끝,
고소한 냄새가 풍겨오는 가게 앞에 멈췄다.
참기름과 들기름 한 병씩 주문했다.
15,000원과 17,000원.
방앗간 공기만으로도
잘 찾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다리는 동안
주인아저씨가 스마트폰을 들고 물었다.
사업자등록증을 어떻게 보내는지
모르겠다며 보여주신 화면.
근처 메모지에 간단히 그려서 알려드렸다.

“도움받았으니”라며
2,000원을 깎아주셨다.
기름을 들고 나서는데
시장길이 괜히 정겹게 느껴졌다.

과일가게 앞에서 발길이 멈췄다.
우리 집은 과일이라면 종류 가리지 않는다.
특히 이 계절엔 수박이지.
참외를 좋아하는 이를 위해 또 바리바리

수박, 참외, 김까지 들었다.
기름만 사러 왔다가
장바구니가 묵직해졌다.
서산사랑상품권이 이렇게 알차게 쓰일 줄은 몰랐다.

집에 돌아와
소주병에 담긴 기름병에
‘참기름’, ‘들기름’
손글씨 라벨을 붙였다.


늘 마트에서 대충 사던 걸
오늘은 제대로 채워 넣었다.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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