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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기록

상추에 숨은 작은 달팽이

mellowbb 2025. 5. 25.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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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추를 씻다, 조그마한 달팽이를 만났다.
야들야들한 잎 사이에 숨어 있던, 아주 작은 생명 하나.

 

직접 농사 지은 상추였다.
잎이 야들야들하고 싱싱했다.
줄기는 연했고,
끝은 반질반질했다.

 

가져다 준 지 얼마 안 돼서
마르기 전에 얼른 씻었다.

 

한 장씩 꼭지를 잘라내
물에 담가 흙을 털었다.

상추 씻는 중 발견한 달팽이
상추 씻는 중 발견한 달팽이

두 번째 물을 버리는데
무언가가 또르르 흘러나왔다.

 

달팽이였다.
조그마한.

 

그냥 두면 죽을 것 같았다.
상추 한 장 꺼내
그 위에 올려줬다.

상추 위에 올라간 달팽이

 


마침 집에
참외 담겨 있던 하얀 스티로폼 접시가 있었다.
그 위에 상추를 올려놓았다.
달팽이도 함께.

물을 뿌린 상추 위의 달팽이

 

물을 조금 뿌려줬다.
상추 잎 하나 더 덮었다.
그늘을 만들어주려고.

가만히 있던 게
갑자기 움직였다.

 

더듬이를 쫙 뻗었다.
네 개였다.

 

두 개는 길고
두 개는 짧았다.

상추 위에서 움직이는 달팽이

 

작은 몸이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더듬이를 꽉꽉 밀어내듯 뻗었다.
이게 진짜 달팽이 맞나
순간 멈춰서 보게 됐다.

더듬이를 뻗는 달팽이

 

빨리 보내줘야겠다 싶었다.
익숙한 자연, 조용한 곳.
근데 어디가 좋을까 생각하면서
상추부터 씻었다.

 

들고 나가면서도
부디 잘 살았으면 싶었다.

 

처음엔 바로 앞 화단에 두고 오려다가
막상 보니까
나뭇잎도 없고 흙만 드러나 있었다.
덥고 노출된 느낌이었다.

손에 들린 스티로폼 접시와 달팽이

 

그래서 다시
좀 더 나은 자리를 찾아보기로 했다.

 

몇 군데를 둘러봤다.
그러다 아파트 한쪽
꽃이 심어진 화단을 찾았다.

손에 들린 스티로폼 접시와 달팽이

 

잎도 무성했고
흙도 촉촉했다.
사람 발길도 거의 닿지 않는 곳이었다.

 

그늘지고 습한 자리를 골라
상추째로 조심히 내려뒀다.

화단에 놓인 상추와 움츠러든 달팽이

 

달팽이는 움츠러든 채
당장엔 움직이지 않았다.
그대로 멈춰 있는 것 같더니
꼼지락꼼지락 조금씩 움직였다.
살짝, 또 살짝.

화단 속 상추 위에서 꼼지락거리는 달팽이

 

아까 상추 위에서
더듬이를 쭉쭉 뻗으며
그렇게 크고 활발해 보였던 달팽이는
어느새 몸을 오므린 채
껍질 안에 반쯤 들어가 있었다.

 

그 모습이
괜히 안쓰러워 보였다.

얼른 적응해서
니 생활로 돌아가.

화단 속 상추 위에서 꼼지락거리는 달팽이

 

달팽이는
낯설거나 위협을 느끼면
몸을 껍질 속으로 숨긴다고 한다.

 

반대로,
안전하다고 느끼면
더듬이를 뻗고 천천히 움직인다고.

 

그때 상추 위에서 보였던 움직임.
그게 편해서였단 말인가.

 

뿌듯했다.
호스트라도 된 것처럼.
달팽이한테 쉴 자리 하나
그냥 잘 내어준 기분.

멀리서 본 꽃화단 속 아주 작은 달팽이

 

스스로 만족하며
괜히 생색내면서

잘 가—

오글거리지만,
소리 내서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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