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신발장을 열었다.한 켤레, 또 한 켤레—어느 계절에도 나서지 못하고 긴 시간 그 자리에 서 있던 구두들을 꺼냈다.정장을 입지 않아도 되는 직장.구두를 고를 일도 없는 출근길.몸에 밴 무게들이 하나둘 벗겨지고,이곳이, 내 마지막 자리가 될지도 모른다는어느 날의 직감 같은 것. 몇 년째 신지 않던 구두 네 켤레.그냥 버리기보다는,누군가의 걸음을 따라가길 바라는 마음으로천 원 단위의 값에 당근마켓에 올렸다. 글을 올리고 몇 분 지나지 않아한 분이 세 켤레를 찜했다.구두를 살 때 들어 있던 얇은 종이.쉬익—그 소리를 따라 천천히 감싸며종이백 안에 조심스레 담았다. 집에 돌아와 확인해보니,세 켤레 중 하나가 바뀌어 있었다.그분이 고른 신발이 아니었다. 다음 날 퇴근길,아파트 후문에서 다시 뵙기로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