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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llowbb 님의 블로그

누구를 지지하든 그건 각자의 자유다.하지만 모였다 하면 정치 얘기고,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갑자기 지지 선언을 하는 상황이 반복된다.그게 건설적인 대화로 이어진 적은 거의 없고,결국 분위기만 싸해진다. 늘 조용히 넘기던 사람이,그날은 퇴근길에 참다 못해 전화를 걸어왔다.그동안 쌓였던 말들을 꺼냈고, 듣는 동안 나까지 불쾌해졌다. 어김없이 점심시간에 등장한 정치 얘기였다고 한다.“전라도 사람은 정치를 잘해서 대통령 돼도 경찰에 안 불려가.근데 경상도는 내란이나 일으키잖아.” 그 자리에 경상도 출신 동료들이 있었다고 한다.지역을 일반화하고 비하하는 말이었다.정치적 표현이 아니라, 명백한 차별 발언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서울 사람”, “경상도 사람”, “전라도 사람”이렇게 딱 잘라 구분 짓는 게 여전히 ..

상추를 씻다, 조그마한 달팽이를 만났다.야들야들한 잎 사이에 숨어 있던, 아주 작은 생명 하나. 직접 농사 지은 상추였다.잎이 야들야들하고 싱싱했다.줄기는 연했고,끝은 반질반질했다. 가져다 준 지 얼마 안 돼서마르기 전에 얼른 씻었다. 한 장씩 꼭지를 잘라내물에 담가 흙을 털었다.두 번째 물을 버리는데무언가가 또르르 흘러나왔다. 달팽이였다.조그마한. 그냥 두면 죽을 것 같았다.상추 한 장 꺼내그 위에 올려줬다. 마침 집에참외 담겨 있던 하얀 스티로폼 접시가 있었다.그 위에 상추를 올려놓았다.달팽이도 함께. 물을 조금 뿌려줬다.상추 잎 하나 더 덮었다.그늘을 만들어주려고.가만히 있던 게갑자기 움직였다. 더듬이를 쫙 뻗었다.네 개였다. 두 개는 길고두 개는 짧았다. 작은 몸이 움직이기 시작하더니더듬이를 꽉꽉..

참기름과 들기름이 똑 떨어졌다. 나물을 무쳐도, 볶음밥을 해도 어딘가 고소한 맛이 빠진 듯 했다. 마트에서 파는 기름은 향이 약했다.'이게 아닌데'사는 지역도 아니고,지갑 속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서산사랑 상품권오늘은 이상하게 꼭 써야 할 것 같았다.무턱대고 네비게이션에 찍고 출발했다.전통시장 안 어딘가엔방앗간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였다. 서산 시장 골목을 이리저리 헤매다야채가게 아주머니께 물었다.“혹시 여기 방앗간 어디 있어요?참기름이랑 들기름 좀 사려고요.”"방앗간들 다 문 닫았어요"그러곤 들기름 한 병을 꺼내"내가 먹으려고 한 병 남겨둔 건데, 가져가요."가격은 25,000원.고마웠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이왕 온 김에제대로 짜는 방앗간을 찾아보기로 했다.익숙지 않은 골목 끝,고소한 냄새가..

우리 회사는 중소기업이다. 출퇴근 시간도, 업무 스타일도 모두 다르다. 심지어 칸막이도 없다. 모두 한 공간에 앉아 있고,옆자리, 바로 뒤, 대각선까지 사람의 움직임이 그대로 느껴진다.집중이 어려운 게 현실이다.각자의 영역에 몰입하지 않으면 금세 흐트러진다. 개인마다 다를 수도 있지만, 나는 주변 소음에 특히 예민하다. 작은 소리에도 집중이 흔들린다. 사무실은 대체로 조용하다.그런데, 그 고요함은 매일 같은 방식으로 깨진다.늘 마지막에 출근하는 팀장 한 사람이문을 열자마자 외친다.“안녕하세요~!” 일하던 손이 멈추고,정적이 흐르던 사무실에 어색한 울림이 돈다.반가움이라기보다는, 집중을 끊는 신호처럼 들린다.마치 “나 도착했습니다”라고굳이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한 인사다. 가장 먼저 퇴근할 때도 똑같다.“..

특별한 건 없었는데오히려 그래서 좋았다. 멍하니 나뭇잎 흔들리는 걸 보다 보니요즘 좀 복잡했던 생각들이조금은 정리되는 기분이 들었다. 딱히 뭘 하려고 하지도 않았고그냥 먹고 싶은 거 먹고듣고 싶은 음악 듣고쉬고 싶은 만큼 쉬었다. 아침은 차 안에서 간단히옥수수 식빵 한 조각으로 시작했고, 점심은 파스타,저녁엔 어묵 국물 한입으로 마무리. Shoop 한 곡으로괜히 잡생각이 줄어든 기분. 괜히 마음이 느슨해졌달까. 별일 없었는데도 마음이 가벼워졌다.

겉으론 조용해도 속으론 셈 빠른 사람들, 겉으론 조용해도 속으론 셈 빠른 사람들이 있다.말은 아끼면서 손익 계산은 누구보다 빠르다.누가 힘이 있는지, 어디에 붙어야 이득인지 귀신같이 알아챈다.이들은 당신의 말을 듣는 게 아니라, 당신의 가치를 재고 있을 뿐이다. 특히 직장을 '일터'가 아닌 '정치판'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이들은 힘 있는 사람에게 아부하거나 선물을 건네는 데에는 놀라울 정도로 적극적이다.하지만 정작 자신의 업무에 있어서는,철저히 공과 사를 구분한다는 명목 아래 해야 할 일은 외면하고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일만 골라서 한다.이들의 선택적인 성실함과 노골적인 계산은 주변 사람들을 허탈하게 만든다. 남을 깎을 시간에 자신을 더 키워라. 그 사람 뒷담화 해봐야 내 월급이 오르지도, 능력이 좋..

전망대에 서면시야가 탁 트인 바다 풍경이 마음을 시원하게 감싼다.5월 초의 맑은 날씨 덕분에선명하게 그어진 수평선과분홍빛 철쭉과 소나무,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은그 자체로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아무리 사진을 여러 장 찍어도눈으로 직접 마주한 그 감동은 온전히 담기지 않았다. 케이블카 탑승장에는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고,꽤 긴 줄을 따라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유리 바닥이 깔린크리스탈 캐빈 앞에 서면발 아래 펼쳐지는 숲과 바다가 아찔하게 내려다보인다. 우리는 크리스탈 캐빈 왕복권 두 장을 구매했다.총 24,000원 중 절반은 환급받아,근처 식당에서 식사비로 사용할 수 있었다. 케이블카 구간은 길지 않지만,내려다보는 풍경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꽃 모양이 수국과 비슷해 헷갈릴 수 있지만,가까이서 보면 꽃잎은 넓고 납작해 마치 단단한 공처럼 보인다.놀라운 건, 이렇게 풍성하게 피어도 향기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꽃밭에는 수국도 있고, 수레국화도 있고, 더 많은 꽃들이 피어 있는데유독 작약 봉오리엔 개미가 많다.알고 보니, 작약은 봉오리에서 단맛 나는 꿀을 내놓는다.개미에겐 좋은 먹이고,그 사이 개미는 작약 곁을 지키며 다른 해충을 막아주는 셈이다.꽃이 활짝 피면 꿀 분비는 멈추고,개미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히 떠난다.작약 위에 개미가 있다는 건지금 이 꽃이 아주 건강하다는 뜻이다. 잎 색이 워낙 강렬해서, 아직 키는 작아도 눈에 먼저 들어온다.자엽안개나무, 품종은 '로얄퍼플'.봄부터 붉고 자줏빛이 감도는 잎을 내고,햇볕을 충분히 받으면 잎..